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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oruen / 키리시마x에노키 (옥도사변) / @Ruen_Dream ]

 

 

 

언젠가부터 거리의 과자가게들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사탕을 진열해 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사탕이 유행하나?’ 기념일이라는 것에 워낙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키리시마는 왜 온 천지가 사탕으로 시끄러운지 알 길이 없었지만, 다행이 그의 친우는 이런저런 것에 박식했던 덕분에 그도 13일의 아침에는 그 기념일의 존재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키리시마, 혹시 화이트데이가 뭔지 모르는 거야?”


“모른다만. 그건 뭐지? 전에 그… 밸런타인데이? 그것과는 다른 날인가?”


“음, 완전히 다른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밸런타인데이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잖아?”


“그렇지”

 

키리시마는 대답을 하며 약 한 달 전의 기념일을 떠올렸다. 올해 밸런타인데이는 유난히 시끄러웠지. 염마청의 명령으로 포스터를 찍는다며 초콜릿을 만들다가 만드는 과정서 대부분의 초콜릿을 먹어치웠나 하면, 특무실 유일의 여성 옥졸인 에노키의 초콜릿을 받기 위해서 의미 없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생각만 해도 피곤한 날이었지만, 분명 재미있었긴 했지. 무엇보다, 자신은 에노키에게 초콜릿도 받았으니까.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는 게 당연했다.

 

“화이트데이는 말이야, 그 반대 날이라고 보면 돼. 남자가 초콜릿을 준 여성에게 보답으로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지”


“보답으로?”


“응. 아, 물론 무조건 그래야 한 다는 건 아니고… 마음을 받아들일 때만, 이라고 할까. 그냥 보답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돼”

 

과연. 그래서 완전히 다른 건 아니라고 한 건가. 키리시마는 금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넌 줄 건가?”


“응? 누구에게?”


“누구에게든”

 

사실 특무실 옥졸들에게 사탕을 줄 만한 여성이란 셋밖에 없는 셈이었는데 ‘누구에게든’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을까.
저택의 요리를 담당하는 키리카, 세탁을 담당하는 아야코, 그리고 유일하게 특무실의 여성 중 자신들과 같은 옥졸인 에노키. 바깥에서 알게 된 여성이 있다고 해도, 사탕을 줄 만큼 친밀한 관계는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에키는 ‘으음’ 하고 말을 늘였고, 고민하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아야코랑 키리카 씨, 에노키 정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거 아니었나?”


“뭐 원래 의미는 그렇긴 한데… 말 했잖아. 보답의 의미도 있다고”

 

‘그렇군’ 큰 의미 없이 대꾸한 키리시마는 사에키가 연주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떠줬다. 물론 나가기 전,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악실에서 나와 무작정 걷는 그의 머릿속에는, 내일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에노키에게 사탕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니, 물론 이 선물은 보답해야한다는 강제성을 느끼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키리시마는 그저 순수하게, 에노키에게 사탕을 선물하고 싶었던 거니까.
그녀라면 단 것은 뭐든 좋아하니 종류는 상관없겠지. 그렇다면 얼마나 사 주면 되는 걸까. 자신은 손수 만든 초콜릿을 두 상자나 받았으니, 사탕 한 봉지로는 안 되겠지?
점점 심각해지는 표정과 땅바닥으로 향하는 고개. 완전히 생각에 잠겨 앞도 살피지 못하던 키리시마는 결국 얼마 못가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얏!”


“아”

 

‘미안하군’ 그렇게 말하며 넘어지는 어깨를 잡은 키리시마가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설마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다니.

 

“키리시마, 놀랐잖아요!”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쓰며 한숨 쉰 에노키는 자신을 잡아준 손을 상냥하게 떼어내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은 걸까. 키리시마는 약간 불평하듯 튀어나온 입술 외엔 그녀에게서 평소와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미안하다”


“다른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어? 키리시마가 넋이 나가다니.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있어요?”


“으음”

 

있긴 했지. 바로 눈앞의 당사자에 대한 일이 말이다.
아무리 정직한 키리시마라도 이런 건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한 그는 결국 고개를 저어버렸다.

 

“별일 아니다. 어딘가 가는 길인가?”


“아, 나는 일 나가요! 내일 아침이면 돌아올 거지만!”


“일? 누구랑!”


“타가미!”

 

이런. 별로 달갑지 않은 상대다. 아니, 확실히 타가미는 좋은 동료이긴 했지만, 그녀와 단 둘이 일이라니. 밸런타인데이에 있었던 그 초콜릿 쟁탈전을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딱히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그녀와 함께 일을 나가는 동료를 다 질투하는 것이 정상일 테니까. 자신이 걱정하는 건, 타가미라면 그녀에게 사탕을 줄 것 같다는 정도뿐일까.

 

‘딱히 누가 먼저 주나 같은 건, 상관없나?’

 

딱히 고백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선물이니 상관없겠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어째서 자신은 가장 먼저 그녀에게 사탕을 전해주고 싶어 하는 걸까. 제일 먼저, 가장 기뻐할 얼굴을 보고 싶어서? 아니면 단순히 자기만족인가?

 

“언제 가지? 지금 당장?”


“응. 왜요?”


“아니다. 조심해서 다녀오도록”

 

잠깐 망설이던 키리시마는 우선 에노키를 보내고, 혼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사탕은 얼마나 주고, 언제 주지? 그냥 보답이라면서 주면 될까? 점점 제 표정이 심각해지는지도 모르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던 그는 결국 혼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아주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갔다.

 

“뭐? 사탕을 주는 방법?”


“그래”

 

그런 것도 모른단 말인가. 아니, 키리시마라면 이런 것엔 서투르니 물어볼 수도 있지. 임무를 다녀온 후 찢어진 장갑을 수선하던 아리사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사탕은 샀어? 아직 안 샀다면 꼭 선물용으로 사. 바구니에 든 거, 여자들은 그런 걸 좋아하거든. 혹시 이미 샀어?”

 

키리시마가 누구에게 사탕을 주고 싶어 하는지 이미 잘 안다는 듯, 아리사와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생각을 읽은 건가?’ 키리시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적갈색 눈에 잠깐 입을 닫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에 대화를 이어갔다.

 

“안 샀다”


“그렇구나. 그래, 굳이 이쪽에게 이런 걸 물으러 온 건 근사한 고백이라도 할 생각이라는 거겠지?”


“아니, 그건 아니다만”

 

자신이 아리사와에게 이런 걸 물으러 온 것은, 단순히 그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여자들과 엮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카사노바라고 해도 좋을까. 남녀를 안 가리고 취향인 상대만 찾으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상대를 유혹해버리는 아리사와는 어떤 의미로 보면 참으로 적절한 연애상담자였으니까.

 

“싱겁게.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서 물어본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만, 그냥… 이런 건 처음이라, 어떻게 주면 되는지 자체를 모르겠다만”


“흐음”

 

답답하기는. 아리사와는 제 연애사도 아닌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차라리 자신의 문제였다면 이렇게 한숨이 나올 일도 아니었겠지. 귀염성이라곤 없는 키리시마가, 어떻게 해야 에노키에게 화이트데이의 의미를 잘 담은 선물을 줄 수 있을까.
긴 시간 고민하던 아리사와는 결국 가장 키리시마에게 잘 맞는 방법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라면 이렇게는 하지 않겠지만, 자신과 키리시마는 다르지. 평소엔 주변이 어찌되든 상관하지 않는 아리사와였지만, 남의 연애사업에서 까지 그런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일단 아무도 없는, 둘만 있는 공간에서 주는 게 중요해. 주면서 받았던 초콜릿 고맙다고 하고, ‘이건 내 마음이야’ 라고 하는 거 잊지 말고. 알겠지?”


“…알겠다. 생각보다 복잡하군”


“뭐, 키리시마에겐 이런 구식 스타일이 잘 맞을 거 같아서. 이쪽이라면 좀 더 간단하고 빠른 방법을 썼겠지만… 키리시마에겐 무리일 거 같고?”

 

도대체 평소에 무슨 방법을 쓰는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어쩐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키리시마는 주머니에 든 돈을 확인하고 상점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타가미와 에노키는 아침식사 후 한 숨 돌렸을 때 쯤 특무실로 돌아왔다.
‘다녀왔어요!’ 휴게실에 나타난 에노키는 양 손 가득 사탕을 안고 있었고, 뒤따라 들어왔던 타가미는 보고를 하러 간다며 곧바로 상사들의 방으로 향했다. 아마 저 품에 안긴 사탕은 타가미가 사준 거겠지. 키리시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미간을 찌푸렸다.

 

“에노키, 그 사탕은?”


“이거? 타가미랑, 사에키랑, 키노시타가 준 거에요!”

 

어쩐지 양이 많다고 했더니, 한 명에게만 받은 것이 아니었나. 그것보다, 키노시타와 사에키는 어느 틈에 준 걸까. 설마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넘겨준 건 아니겠지? 생각보다 본격적인 제 동료들을 보자 괜히 기가 죽은 그는 어제 사놓은 사탕을 떠올렸다.

 

‘분명, 선물용으로 사라고 했지만’

 

웬만하면 아리사와의 조언을 따르고 싶었지만 키리시마의 지갑 사정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상점에 가 사탕바구니를 사려던 그는 생각보다 비싼 사탕들의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바가지’라는 것이겠지. 잠깐 고민하던 그는 결국 평소 에노키가 좋아하던 사탕을 사오는 것으로 타협하고 말았다. 뭐, 대단한 것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상대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산 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

 

“에노키, 잠깐 기다리겠나?”

 

마침 휴게실에는 자신과 에노키밖에 없다. 중간에 누가 들어오면 낭패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 절호의 찬스겠지. 그녀를 세워두고 냅다 방으로 올라간 키리시마는 사탕봉지를 집어 들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걸 좋아하는 걸까’

 

화이트데이 전날이라 수많은 사탕들이 팔려나가는 도중에도, 이 우유맛 캔디만큼은 제법 여유 있게 남아있었지. 물론 이 사탕이 유난히 인기가 없다던가,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과연 다른 사탕들도 다 제쳐두고 이 사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얼른 내려가도 모자랄 판에 사탕봉지를 들고 고민하던 그는, 결국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본 후에야 휴게실로 내려갈 수 있었다.
데굴데굴. 입 안에서 희뿌연 사탕을 굴릴 때 마다 혀를 녹여버릴 정도로 깊은 단맛이 퍼진다. 확실히 달고 고소하다. 어린애들이나 좋아할 맛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에노키와 더 어울렸다.

 

“에노키”


“응? 왔어요?”


“이거”

 

들고 있는 사탕봉지를 쓱 내민 그는 어제 아리사와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다. 무슨 말을 하라고 했더라? 몇 번이고 되뇌던 말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던가.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일단 입을 연 키리시마였지만, 나오는 건 단내 나는 한숨뿐이었다.

 

“와! 키리시마도 주는 거예요?”

 

다행인 것은 별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기뻐해 주고 있다는 점일까. 제가 좋아하는 사탕임을 알아본 에노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서 사탕을 받아갔고, ‘고마워요’라고 인사 했다.
아, 맞아. 그래. 저번 달에 받은 초콜릿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지. 그녀의 인사에 겨우 했어야 했던 말을 떠올린 그였지만, 에노키는 그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근데, 뭐 먹고 있어요?”


“…아, 이거. 그거”


“그거?”


“네게 준 사탕. 무슨 맛인가 궁금해서 하나 먹어봤다”

 

‘헤에’ 묘한 표정을 지은 에노키가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세상에 남 줄 선물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미안하게 되었군”


“그래서? 맛있어요? 어때요?”

 

제 취향에 공감해 줄 사람이 생긴 게 좋은 걸까. 아니면 순수하게 키리시마의 반응이 궁금한 걸까. 에노키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쩐지,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키리시마는 고개를 살짝 뒤로 빼고, 사탕의 색처럼 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줘도 되나? ‘달아서 질릴 정도다’라고? 아니면 ‘빼앗아 먹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걸까? 다급하게 돌아가도 모자랄 머리를 둔하게 하는 지독한 단맛에 입을 오물거리던 그는, 결국 이 단맛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탕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어디 도망갈 리도 없는 어깨를 잡고, 자그마한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친다. ‘아’ 그녀가 소리 없는 감탄사를 내뱉는 틈을 놓치지 않고 입안의 사탕을 넘겨준 키리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너무 달아서 먹기 힘들다. 돌려줄 테니 불평은 말도록”


“…에, 아니… 저… 키리시마?”


“그럼. 맛있게 먹어라”

 

새하얀 얼굴이 귀 끝까지 붉게 물든다. 키리시마는 당황해서 갈 곳을 잃은 그녀의 시선을 피해 방을 나오는 동안에도, 입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단맛에 계속 침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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